[이춘근의 국제정치 201회] 주한 미군이 점령군이라고?!

[이춘근의 국제정치 201회] 주한 미군이 점령군이라고?!

간략한 요약

이춘근 TV의 이번 강의는 "주한미군은 점령군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최근 국내 정치 논란과 관련된 역사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주한미군은 북한이 불러들인 미군이며, 현재의 주둔은 한미 상호 합의에 따른 것입니다.
  • 한반도 분단과 주한미군 주둔의 배경에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의 외교적 상황과 미국의 전략적 판단이 있었습니다.
  •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우호적이었으며,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한국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소개 [0:00]

최근 국내 정치에서 주한미군을 점령군이라고 칭하는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올바른 역사 해석의 문제이며, 대한민국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사적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한미군과 종북주의 [1:49]

주한미군을 점령군이라고 주장하는 나라는 북한입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은 사실상 북한이 불러들인 미군입니다.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종북주의자 또는 주사파로 불립니다. 주체사상은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먼 봉건적 독재 체제에 가깝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원인 [3:01]

국제 문제를 분석할 때, 눈에 보이는 원인(프레스 피턴트 코스)과 그 이면에 숨겨진 원인(언더라인 코즈)을 구분해야 합니다. 한반도 분단의 프레스 피턴트 코스는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영국, 프랑스, 소련, 미국,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상황 [7:11]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시기는 1942년 6월입니다. 당시 일본은 만주 전체, 중국의 상당 부분, 동남아시아, 뉴기니, 인도네시아 등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일본이 점령했던 땅 중 하나였습니다. 일본 제국의 넓이는 851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했으며, 이는 한반도의 4배에 가까운 면적입니다.

한국 분단사 [9:42]

조순승 교수의 "한국 분단사"는 한반도 분단 스토리를 가장 감명 깊게 다룬 책 중 하나입니다. 이 책에서는 2차 대전 후 극동 정치의 혼란의 주된 원인이 소련의 국제 협정 위반 때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우호적이었으며, 미국은 한국을 보호하려는 정책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카이로 회담과 얄타 회담 [12:49]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한국)이라는 나라가 국제 무대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주요 관심 대상이 아니었으며, 얄타 회담에 참석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국 관련 보고서를 챙기지도 않았습니다. 카이로 회담에서 장개석만이 한국의 독립을 지지했습니다.

미국의 대소련 전략 [14:09]

미국은 2차 대전 당시 소련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만주에 주둔한 일본 관동군을 두려워하여 소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을 이유로 참전을 미루다가, 전쟁이 끝날 무렵에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38선 획정 [15:41]

38선은 1945년 8월 10일 밤에 급하게 결정된 경계선입니다. 미국은 핵무기 개발 성공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참전을 여전히 필요로 했습니다. 소련은 1945년 8월 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고,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소련은 일본과의 중립 조약을 깨고 전쟁에 참여했으며, 이는 미국에게 큰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38선 결정 과정 [20:07]

미국은 소련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38선을 제안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소련이 한반도를 모두 점령할 것을 우려했습니다. 조지 링컨 준장과 러스크, 본스틸 대령이 38선을 제안했으며, 소련이 이를 받아들일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러스크 대령은 소련이 거부할 경우 36도선까지 양보할 의향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소련은 38선을 받아들였습니다.

미군의 한반도 진주 [22:33]

소련군은 8월 24일까지 북한 지역을 완전히 점령했습니다. 9월 8일, 미군은 한반도에 진주했지만, 이는 한국을 점령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었고, 미국은 철수를 고려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23:56]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미군은 다시 한반도에 투입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으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군은 한국에 주둔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미국의 육군, 해군, 공군을 대한민국 영토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허여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했습니다.

결론 [27:28]

현재 주한미군은 한국을 점령하기 위해 온 적이 없으며, 한미 상호 합의에 따라 주둔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주한미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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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2/20/2025 Source: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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