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지금 트럼프보다 산업혁명의 역사를 봐야하는 이유 | The Civilization 위대한 문명사 1화 | 서울대 김태유 명예교수

(1화) 지금 트럼프보다 산업혁명의 역사를 봐야하는 이유 | The Civilization 위대한 문명사 1화 | 서울대 김태유 명예교수

간략 요약

이 비디오에서는 김태유 서울대학교 교수가 출연하여 문명의 발전과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눕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산업 혁명과 선진국 발전 원리
  • 한국 경제 발전의 역사적 맥락과 미래 전망
  • 공학 교육의 중요성과 사회적 인식 변화
  • 문명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산업 혁명의 역할

인트로

인류 역사상 산업 혁명을 통해 선진국이 된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반칙'과 같은 특별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방법은 미국, 독일, 일본을 거쳐 한국과 중국에 이르기까지 전파되며 국가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문명 시리즈 소개

언더스탠딩 채널에서 새로운 시리즈 "더 시빌라이제이션"을 시작합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문명의 발전과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다루며, 서울대학교 김태유 교수와 함께합니다. 김 교수는 자원 공학을 전공했지만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문명사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자원 공학 전공과 문명사 연구의 연결고리

김 교수는 원래 역사 소설을 좋아하여 역사학과에 진학하려 했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공과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아버지는 시계의 태엽처럼 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사람이 되라고 조언했습니다. 김 교수는 공학을 공부하면서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한국 사회의 이공계 기피 현상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과거에는 이공계 출신이 사회적으로 더 나은 대우를 받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공계 르네상스의 가능성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 로봇 기술 등의 발전으로 이공계의 르네상스가 다시 올 것이라고 김 교수는 확신합니다. 과거 한국 경제 성장은 일본과 독일의 선진국 사례를 모방한 결과였지만, 이제는 창조적인 기술 혁신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섬유, 자동차, 전자 산업 분야에서 비전공 출신 관료들이 일본 출장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했지만, 이제는 지뢰밭에서 앞사람의 발자국만 따라갈 수 없는 상황과 같습니다.

경제학으로 전향한 이유

김 교수는 공과대학에 다니면서 학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석유 위기를 겪으면서 에너지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유학 중 자원 경제학 분야에서 공학적 지식과 경제학적 지식을 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경제학으로 전향했습니다. 영국의 석탄 산업 혁명, 미국의 석유 산업 혁명을 연구하면서 에너지와 산업 혁명의 연관성을 깨달았습니다.

산업 혁명과 국가 발전 원리 연구

김 교수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에너지 경제학 교수를 지내다가 산업 공학과로 옮겨 산업 혁명과 국가 발전 원리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과학 기술과 자연 법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공학적 지식이 경제학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업 혁명에서 증기 기관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경제학적 분석에 필수적입니다.

증기 기관의 역사

제임스 와트 이전에도 뉴커먼 기관이라는 증기 기관이 있었지만, 효율성이 낮아 석탄 광산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 기관의 효율성을 높여 공장에서 면직물을 짜는 데 사용되면서 산업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산업 혁명의 시작은 석탄이라는 에너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 경험

김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으로 근무하며 4차 산업 혁명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당시에는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과학 기술 중심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과거 한국의 경제 기획원과 재무부가 각각 미래 기획과 단기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면서 성공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1994년 두 부처가 통합되면서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었습니다.

과학기술부 부총리 부서 승격

김 교수는 4차 산업 혁명 성공을 위해 중요한 일을 책임지는 독립된 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과학기술부를 부총리 부서로 승격시키고, 예산실로부터 예산을 통째로 받아와 과학기술부 내부에 예산실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공계 출신들을 공직에 진출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공계 박사 특별 채용

김 교수는 이공계 박사 50명을 특별 채용하여 공무원으로 전진 배치했습니다. 이로 인해 고시촌에서 데모가 일어나고, 행정자치부에서 반발하는 등 많은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청와대 내에서도 김 교수는 '말썽꾸러기'로 낙인찍혔습니다.

과학기술부의 반대

김 교수가 추진하는 4차 산업 혁명에 가장 우호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과학기술부가 오히려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이는 기획재정부 출신들이 과기부 요직을 차지할 것을 우려하고, R&D 카르텔의 기득권을 뺏길 것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개혁 실패 후 깨달음

김 교수는 청와대를 나온 후 후임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달했지만, 4차 산업 혁명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학기술 부총리 부서가 다시 과학기술부로 돌아갔습니다. 김 교수는 과거 자신의 설명 방식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일방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학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을 바꾸려 했다는 것을 반성했습니다.

역사 공부의 중요성

김 교수는 과학 기술과 경제 이론만으로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역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50대 중반에 산업 혁명사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나려 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한국에 있는 젊은 역사학자들에게 8년 동안 사사를 받았습니다. 역사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재미있기 때문에 설득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문명에 대한 새로운 정의

일반적으로 문명은 농업 혁명으로 시작된다고 정의하지만, 김 교수는 산업 혁명 이후를 진정한 문명 사회의 시작으로 봅니다. 농업 사회는 식량 생산이 제한적이고,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어 대중의 삶이 오히려 퇴행했습니다. 반면, 산업 혁명은 유아 사망률 감소, 평균 수명 증가, 영양 상태 개선 등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산업 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지만, 농업 사회에서는 남을 착취해야만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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