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이 비디오는 불교적 관점에서 계율, 중독,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계율의 본질: 계율은 단순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욕심과 분노에 빠지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 맛과 생각: 음식의 맛은 생각과 느낌에 의해 좌우되며, 사실 그대로의 맛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사랑과 집착: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은 종종 자기 생각에 대한 집착일 수 있으며,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 자비의 본질: 자비는 특정한 사람이 항상 가지는 성질이 아니라, 매 순간의 경험 상태에 따라 나타나는 마음입니다.
아이스크림 맛의 본질
아이스크림의 맛은 단순히 재료의 조합이 아니라, 광고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형성된 생각과 느낌의 맛입니다. 실제 아이스크림은 우유, 설탕 등의 재료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러한 재료를 따로 먹을 때와 아이스크림으로 먹을 때의 맛은 다릅니다. 아이스크림 맛은 생각의 맛이며, 광고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분리
음식의 맛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의 개별 성분이 아니라, 이들이 조합되었을 때 나타나는 전체적인 경험입니다. 소세지나 팥과 같은 음식도 마찬가지로, 개별 성분으로 분리해서는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아이스크림의 경우, 각 재료를 따로 먹으면 아이스크림 맛이 나지 않지만, 한꺼번에 먹으면 아이스크림 맛이 납니다.
생각과 느낌의 맛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것은 생각과 느낌, 착각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스크림이라는 실체는 없으며, 맛은 생각과 느낌에 의해 결정됩니다. 모든 중독이나 좋고 싫음은 생각에서 비롯되며, 사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은 생각으로 마시지 말고, 사실로 마시라는 의미입니다.
맛으로 먹는다는 것
음식은 맛으로 먹어야 하며, 색깔, 모양, 이름으로 먹는 것은 생각입니다. 세상에 맛없는 것은 없으며,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은 생각에 의해 구분됩니다. 수행에서는 맛을 즐거움이나 불편함으로 느끼지 않고, 경험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음식의 모양, 색깔, 이름에 얽매이면 생각과 느낌에 갇히게 됩니다.
계율의 의미
계율은 욕심과 분노에 빠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계율이 아니라, 술로 인해 욕심이나 분노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수행은 욕심과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계율은 들리는 순간, 보이는 순간에 욕심과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경험 상태와 계율
계율은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며, 술이라는 생각의 느낌 상태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마찬가지로, 좋은 냄새나 나쁜 냄새, 좋은 소리나 나쁜 소리 등 모든 것에 대해 생각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계율의 핵심은 욕심과 분노에 빠진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현상에 대한 착각이 없으면, 현상에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술에 대한 비유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은 취하지 말라는 의미이며, 취한다는 것은 생각과 느낌 상태에 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주의 기운, 망치 소리, 냄새, 소리, 향기, 음식, 느낌 등 모든 것에 취할 수 있습니다. 계율은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해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비심의 본질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사랑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출가했으며, 예수님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죄인과 함께 했습니다. 진정한 자비심은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며, 개미나 모기 같은 작은 생명체에 대해서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과 생각
세상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기 생각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상대방을 알 수 없으며, 오로지 상대방에 대한 자기 생각만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취해지는 것입니다.
생각의 함정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생각의 작용 때문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생각은 상대방 그 자체가 아니며, 상대방에 대한 사실도 아닙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싸움이 일어나고, 집착이 생기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도 합니다.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사실이라고 믿는 상태가 무지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심
부처님은 작은 생명체에 대해 함부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족에게는 매정하게 대했습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자비심과는 다릅니다. 부처님은 모기에게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사랑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일까요, 아니면 욕심일까요?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종종 자기 자신의 욕심 때문입니다. 자식이 잘 되면 자기가 자랑스럽고, 못하면 자기가 책임감을 느낍니다. 진정으로 자식을 위한다면, 자식이 행복한 길을 선택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괴로워하면 함께 괴로워하지 않고, 상대방이 행복한 길을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괴롭다는 사람을 강요하거나 죽여버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자비한 사랑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무자비하며, 세상 사람들의 정의나 감정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생각의 관점에 대해 냉정하며, 세상의 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아이가 울고 있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거기에 얽매이면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천심(天心)
공자는 인(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천심(天心)을 강조했습니다. 천심은 물에 빠진 아이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같습니다. 천심은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욕심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욕심은 괴로움의 원인이 되지만, 천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과 무지
사랑 없는 사람도 없고, 자비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그때그때 일어나는 생각에 빠지면 무지해지고, 생각에 빠짐이 없으면 부처가 됩니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 진정한 사랑과 욕심의 차이는 바로 그 하나의 차이일 뿐입니다. 계율도 그 하나의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자비로운 부처
부처는 자비로운 분이 아니라, 매 순간 생각에 빠짐이 없는 분입니다. 항상 자비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으며, 보이는 순간의 경험 상태에 따라 자비심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자비심으로 가득한 부처는 없으며, 자비심이 없는 누구도 없습니다.
사무량심(四無量心)
불교에서는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의 사무량심을 이야기합니다. 사무량심은 특정한 상태를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일어나는 경험 상태입니다. 자비희사를 가진 나, 사무량심을 가진 부처라는 것은 무지한 생각일 뿐입니다.
상(相)의 초월
부처는 상(相)이 상(相) 아님을 알기 때문에, 마치 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과 내 자식이라는 상에 얽매이지 않으면, 자비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경험 상태의 마음 상태가 자비희사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생각에 빠져 버리면 자비희사는 사라지고, 욕심과 분노가 생겨납니다.
수행의 본질
수행은 매 순간의 경험 상태가 어떤지 점검하는 것이며, 본인의 인생 경험이 어떤지 점검하는 것입니다. 찰나의 지금 상태에 따라 수행이라 이름하기도 하고, 수행이 아니라고 이름하기도 합니다. 항상 지금 들리는 순간에 일어난 상(相)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는 상태면 욕심과 분노가 생겨나고, 거기에 얽매임이 없으면 누구나 자비로워집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