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이 다큐멘터리는 칼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 특히 그의 대표작인 "자본론"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분석하고 노동자의 착취 문제를 제기하며 사회주의 혁명을 예견한 과정을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결합하여 유물론적 변증법을 확립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했습니다.
- 그는 엥겔스와 함께 공산주의 운동을 전개하며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고, 유럽 혁명에 참여했습니다.
-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 잉여가치, 자본 축적 등을 분석하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동자 계급의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소개 [0:00]
19세기 아담 스미스의 자유 시장 체제가 발전했지만, 자본에 의해 희생된 노동자들의 고통은 커져갔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가 등장했습니다. BBC는 지난 1000년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마르크스를 선정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왜 가난한 사람이 항상 가난한지를 묻고, 자본주의가 정말 이상적인 체제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 부품처럼 취급받는 노동자들의 삶과 자본주의가 그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밝히고자 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철학적 배경 [1:27]
마르크스는 청년 시절 헤겔의 변증법에 심취했습니다. 변증법은 세상의 모든 것이 정반합의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철학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절대 정신이라는 헤겔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받아들였습니다. 유물론은 물질이 세계를 구성하고 지배하며 이끌어간다는 사상입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결합하여 유물론적 변증법이라는 자신만의 관점과 철학을 확립했습니다.
라인 신문 편집장과 엥겔스와의 만남 [2:42]
1843년, 마르크스는 급진적 반정부 신문인 라인 신문의 편집장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엥겔스를 만나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즉 공산주의와 엥겔스를 얻게 됩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사상적 동지이자 경제적 후원자로서, 마르크스가 혁명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느끼고 동지적 관계를 맺었습니다.
공산주의 운동의 시작 [6:58]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비참한 노동자들의 삶을 목격하고, 공산주의 조직과 만나면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엥겔스와 함께 불평등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혁명을 준비합니다. 1845년, 마르크스는 프로이센 국적을 포기하고, 브뤼셀 비밀 동맹과 접촉하며 혁명을 모색합니다. 1847년, 두 사람은 공산주의자 동맹의 강령을 밝히는 "공산당 선언"을 쓰게 됩니다.
공산당 선언과 유럽 혁명 [9:58]
"공산당 선언"이 출판된 1848년, 유럽은 혁명의 물결에 휩싸였습니다. 마르크스는 브뤼셀, 파리, 쾰른 등지로 가서 혁명에 참여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마르크스는 붉은 박사라는 악명과 인류 해방을 가져올 새로운 사상을 창조했다는 명성을 동시에 얻게 됩니다. 하지만 혁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마르크스는 추방당하게 됩니다.
영국 망명 생활과 자본론 집필 [11:25]
1849년, 마르크스는 영국으로 망명하여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힘겨운 생활을 이어갑니다. 제니는 마르크스가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아들 에드가가 폐렴으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엥겔스의 지원 덕분에 작은 연립주택으로 이사한 후, 마르크스는 드디어 "자본론" 집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자본론의 내용 [14:50]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이유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수백 번 읽고, "자본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책이 바로 "국부론"이었습니다. 1867년, 마르크스는 15년 이상을 바친 필생의 역작 "자본론" 제1권을 출간했습니다. "자본론"은 마르크스가 유물론적 변증법을 적용하여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한 책입니다.
상품, 노동, 잉여가치 [16:00]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상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정의하고,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평균 노동시간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화폐 물신성이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노동 가치론을 이어받아 노동이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했지만, 아담 스미스의 분업은 오히려 노동자를 기계 부품처럼 만든다고 비판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왜 노동자들은 항상 가난하고, 자본가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잉여가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잉여가치와 자본주의의 위기 [19:17]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 중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을 잉여가치라고 정의했습니다. 자본가는 노동시간을 연장하거나 노동 생산성을 높여 잉여가치를 늘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가의 이기심 때문에 실업자가 증가하고, 임금은 낮아지며, 상품은 과잉 생산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결국 자본주의의 위기가 시작되고, 참다 못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예견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죽음과 자본론의 완성 [22:56]
1883년,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가장 아끼던 의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사후,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유고를 모아 "자본론" 제2권과 제3권을 발간했습니다. "자본론"은 사회주의 성서로 불리며 성경보다 더 많이 팔린 책이라는 명예를 얻게 됩니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레닌을 비롯한 혁명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유산과 현대적 의미 [25:52]
"자본론"이 세상에 나온 지 140년이 지났지만, 자본주의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새롭게 변신하며 살아남았습니다. 이는 마르크스가 남긴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가 우리에게 절박한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자본론"을 썼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것이 바로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자본론"의 가치입니다.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