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이 비디오는 한국 과학 기술 발전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합니다. 초기 과학 교육 기관 설립부터 시작하여, 원자력 기술 집중, 과학기술처 설립, KIST 설립, 홍릉 연구단지 조성, 대덕연구단지 건설, 특정 연구 개발 사업, 선도 기술 개발 사업 (G7 프로젝트) 등을 거치며 한국 과학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보여줍니다.
- 과학 교육 기관 설립 및 원자력 기술 집중
- 과학기술처 설립 및 KIST 설립
- 홍릉 연구단지 조성 및 대덕연구단지 건설
- 특정 연구 개발 사업 및 선도 기술 개발 사업 (G7 프로젝트)
전쟁 후 과학 정책의 시작
전쟁 직후 한국은 과학 기술의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정부는 문교부 산하에 과학 교육 기관을 설치하여 과학 정책을 시작했습니다. 혁명 정부는 빈곤한 경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과학 기술에 주목했고, 특히 원자력 기술에 집중했습니다. 1959년에는 원자력 관련 사업을 추진할 전담 기관으로 원자력원을 설립하여 전문 인력 양성에 주력했습니다.
과학기술처 설립과 국가 지원 체계 확립
1960년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면서 과학 기술에 대한 국가적 지원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과학기술처가 설립되었습니다. 과학기술처 설립으로 과학 기술에 대한 국가적 지원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관련 정책과 기술 자립을 위한 종합적인 제도 및 조직들이 형성되었습니다.
KIST 설립과 연구개발의 시작
미국은 한국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대가로 경제 원조를 약속했고, 한국 정부는 미국식의 새로운 종합 연구기관 설립을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요청의 결과로 한국 과학 기술 연구소(KIST)가 설립되었으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부출연 연구기관이었습니다.
홍릉 연구단지 조성과 특정 연구기관 육성
1970년대 중화학 공업이 산업의 중심이 되면서 기술 수요가 급증했고, 전국민 과학화 운동은 과학 기술의 대중화와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서울 동부에 위치한 홍릉을 중심으로 연구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1973년 제정된 특정 연구기관 육성법에 따라 철강, 전자, 조선, 화학 공업 등 5개 전략 산업을 지원할 연구기관들이 설립되었습니다.
대덕연구단지 건설과 연구개발 투자 확대
홍릉 연구단지가 우리나라 연구개발의 중심지가 되면서 출연료는 대폭 증가하기 시작했고, 정부는 새로운 프로젝트로 대덕연구단지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1982년부터 1990년까지 과학기술처는 특정 연구 개발 사업에 7930억 원의 연구비를 투입하여 산업기술부터 첨단기술 분야까지 국내 연구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보통신기술 발전과 반도체 기술력 확보
1980년대 과학 기술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한 분야는 정보통신기술 분야였습니다. 1983년 민관 공동 연구로 64K SRAM 개발에 성공했고, 1986년 1M DRAM 개발 추진 사업은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력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선도 기술 개발 사업 (G7 프로젝트) 추진
1990년대 과학기술 정책은 민간 주도의 기술 개발 체제를 정착시키고 국가연구개발 자원을 분야별로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1992년 실시한 선도 기술 개발 사업(G7 프로젝트)은 선진 7개국 진입을 목표로 추진되었습니다. 이 사업은 기획 단계부터 구체적인 목표와 사업 후보 주제를 선정한 후 연구 계획서를 받는 하향식 추진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총 3조 6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습니다. 특히 정보통신망 기술 분야에 많은 연구비가 투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