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이 영상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방사선 피폭 사례인 세실 켈리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120시버트라는 치명적인 방사선에 노출된 켈리의 사고 경위, 신체 변화, 사망 과정, 그리고 사고 후 이어진 조사와 논란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 세실 켈리는 핵물질 처리 중 임계 사고로 인해 엄청난 양의 방사선에 피폭되었습니다.
- 켈리는 급성 방사선 증후군으로 고통받으며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습니다.
- 사고 후 켈리의 장기가 연구용으로 적출되었고, 이는 유족 동의 없이 진행되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세실 켈리 방사선 피폭 사고
1958년 12월 30일,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에서 핵물질 재처리 연구를 하던 세실 켈리는 플루토늄 액체 혼합 탱크를 다루던 중이었습니다. 탱크 내 플루토늄 농도가 불균일한 상태에서 켈리는 평소처럼 탱크를 가동했고, 이로 인해 단 1초 만에 임계 질량을 돌파하며 핵분열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켈리는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중성자와 감마선에 피폭되었습니다.
피폭 직후 켈리의 상태
임계 사고가 발생한 순간, 켈리는 사다리에서 추락하며 피폭되었습니다. 그는 "내 몸이 불타고 있다"고 외치며 쓰러졌고, 주변 기술자들은 그를 화학 물질 샤워실로 데려가 씻겼습니다. 당시 기술자들은 임계 사고를 인지하지 못하고 알파 붕괴 현상이나 산성 수조에 빠진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하지만 감마선 측정 결과, 켈리의 연구실에서 시간당 수십 라드에 해당하는 강한 감마선이 관측되어 임계 사고가 발생했음이 밝혀졌습니다.
급성 방사선 증후군과 켈리의 고통
켈리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급성 방사선 증후군의 전형적인 초기 증상을 보였습니다. 어지럼증, 구역질, 혼란 상태가 지속되었고, 의료진은 진통제를 투여하여 통증을 줄이려 노력했습니다. 정밀 검사 결과, 켈리의 맥박은 분당 160회, 혈압은 80/40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특히 그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감마선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혈액 검사 결과 120시버트의 방사선에 피폭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죽음을 향해
켈리의 몸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주요 장기와 조직이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백혈구, 적혈구, 림프구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피폭 24시간 후, 켈리의 골수는 적혈구를 생성하지 못해 혈액이 물처럼 투명해졌습니다. 심장 기능이 저하되고 혈소판이 전멸하여 수혈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켈리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고, 결국 다발성 장기부전과 신부전으로 사망했습니다.
사고 조사와 장기 적출 논란
켈리 사망 후 임계 사고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고, 탱크 속 혼합물 농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플루토늄이 과도하게 뭉쳐진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당시 탱크에는 임계 상태 방지 장치나 경고 시스템이 없었습니다. 켈리의 뇌, 척수, 근육, 뼈 등 각종 장기들이 연구용 샘플로 적출되었는데, 이는 유족 동의 없이 진행되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유족들은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를 운영했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관련 기관들을 대상으로 집단 소송을 진행했고, 일부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피고 측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