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이 영상은 대한민국 건국 훈장 수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항일 무장 투쟁의 과장된 신화와 그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들을 파헤칩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건국 훈장 수여 기준의 변질과 남발
- 항일 무장 투쟁의 실상 왜곡과 과장
- 독립운동가들의 다양한 사상적 배경과 활동
- 역사 왜곡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
서론: 밤잠을 설치게 하는 대한민국의 가치 체계
현재 대한민국은 30~40년간 가치 체계가 뒤집어진 상태이며, 이는 역사관 논쟁에서 대한민국 세력이 완패한 결과입니다. 모든 사상 투쟁의 핵심은 역사 해석 싸움인데, 이 싸움에서 건전한 발전을 기원하는 세력이 참패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절벽이 되었습니다. 특히 항일 무장 투쟁은 국민들을 선동하는 무기로 사용되었고, 이에 대한 진지한 공부가 부족했습니다. 역사책에 기록된 항일 무장 투쟁의 황당무계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하여 가짜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건국 훈장의 기준 변화와 문제점
건국 훈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 이바지한 사람에게 수여됩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독립운동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있었지만, 5.16 이후 국수적인 민족주의 광풍이 불면서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김영삼 정부 이후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에게까지 건국 훈장이 남발되었습니다. 그 결과, 건국장 수훈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 인물에게도 무차별적으로 건국장이 수여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유인석과 최익현: 주자성리학 수호자들의 건국 훈장
유인석과 최익현은 대표적인 수구 꼴통으로, 개화와 근대화를 반대하고 조선을 중화 질서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인석은 의병을 일으킨 이유를 밝히면서 조선은 소중화 예의의 나라이고, 일본과 7일 대화를 처단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주자성리학의 부흥을 위해 의병을 일으켰지만, 대한민국은 주자성리학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최익현 역시 강화도 조약에 반대하며 도끼를 들고 상소를 올렸다가 흑산도로 유배를 갔습니다. 그는 조선은 중국인 기자가 만들어 준 나라라고 주장하며 쇄국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인물들에게 건국 훈장을 수여한 것은 대한민국의 가치와 맞지 않습니다.
13도 창의군 이인영: 효를 위한 의병 해산
13도 창의군 이인영은 서울 진공을 위해 군대를 모았지만, 부친상을 당하자 의병을 해산하고 3년상을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나라에 대한 충성보다 부모에 대한 효도를 우선시했으며, 이는 일본 헌병대장과의 대화에서도 드러납니다. 이러한 인물에게도 박정희 군사혁명 정부는 건국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신규식: 중화 사상에 빠진 독립운동가
신규식은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음독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여 한쪽 눈을 실명했습니다. 그는 조중 반제 연대론을 주창하며 중국 혁명을 조선의 혁명과 동일시했습니다. 그는 상해 임정 국무총리 서리 자격으로 순원 총통에게 국궁의 예를 올렸다가 임정 내에서 비난을 받고 내각이 붕괴되었습니다. 절망한 신규식은 고기를 끊고 굶어 죽었습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과장된 승리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는 일본 통치 기간 동안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2대 전투로 알려져 있지만,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실빙성 있는 사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본군 전투 상보에 따르면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이 승리했고, 청산리 전투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장세윤 교수는 봉오동 전투에서는 일본군 100명, 청산리에서는 400~500명이 살상되었지만, 독립군도 그의 못지않은 피해를 본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김학철은 독립운동사가 신화에 가까울 정도로 과장되어 있다고 비판하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전과는 300배 이상 과장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좌진: 만주벌의 마왕
김좌진은 무장 투쟁을 위해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에서 여섯 차례 무장 강도짓을 하다가 체포되어 2년 6개월 형을 살았습니다. 그는 만주에서 대한 독립군단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조선 사람들에게 군자금을 강요하고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의 만행에 지쳐 빈주현 조선 사람들이 비밀 회의를 열자, 김좌진은 무장대원을 보내 주민 6명을 때려죽였습니다. 결국 그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청부 살인을 당했습니다.
장덕진: 권총 강도도 의거?
장덕진은 군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상해 프랑스 족계의 외국인 카지노에 권총을 차고 들어가 팔도를 털었습니다. 그는 카지노를 털다가 중국인 경비가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그에게 건국장 독립을 수여했습니다.
신채호: 아나키스트의 건국 훈장
신채호는 개신유학자에서 민족주의 사학자로, 그리고 아나키스트로 전향한 특이한 인물입니다. 그는 무정부주의 동방연맹 활동을 위해 수표를 위조했다가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와 국가를 유산계급이 무산계급을 착취하는 인유 분세소라고 표현했습니다.
육군사관학교의 뿌리 논쟁: 신흥무관학교의 진실
문재인 정부는 육군사관학교의 역사적 뿌리를 신흥무관학교로 바꾸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이 몇 명인지, 누가 졸업생인지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흥무관학교 관련된 내용은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자유시 참변에서 우리 독립군을 쏴 죽이는 편에 가담했고, 소련군 장교가 되어 소련군을 위해 일한 사람들에게 건국장을 수여했습니다.
결론: 독립운동의 실상과 대한민국의 정체성
지금까지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국적이 뭐였는지에 대해서 묻거나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중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중국이 한국과 전쟁을 할 때는 누구 편을 들까요? 좌파 사관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득권자나 외부 침략자와의 투쟁이나 저항에서 찾습니다. 그 결과 동학농민운동이 일제 침략기에 항일 무장 투쟁으로 발전했고, 그 정신이 3일운동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영웅으로 띄운 김원봉이나 홍범도는 사회 재산 제도를 부인하고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건장을 추서하면 항일 무장 투쟁가들이 세운 북한이 민족사적 정통성이 있다라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자유민주 대한민국을 건데 희생한 사람이 누군지를 가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