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이 비디오는 평지 수훈의 마지막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화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은 행위가 아닌 은혜를 중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핍박은 성도에게 필수적이며, 이는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비롯됩니다.
-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을 의지하며, 세상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구해야 합니다.
서론
지난 시간 사복화의 세 번째 내용인 울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마태는 이를 애통이라고 표현하며, 이는 육적인 울음보다는 영적인 울음을 의미합니다. 평지 수훈은 12사도의 이야기 뒤에 나오며, 이는 하나님의 아들을 교훈하는 사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통치와 사단의 통치만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아들과 사단의 아들만이 존재합니다.
마귀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 자녀 또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예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마귀의 자녀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율법 준수에 진심이었지만, 그 율법으로 예수를 대적했습니다. 12사도의 이야기 전에 마귀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그 이후에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복화의 의미
사복화는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교훈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의 아들과 달리 행위를 중시하지 않고 은혜를 중시합니다. 하나님이 주실 것보다 하나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생명이라는 복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산상수훈과 평지수훈의 올바른 이해
생명의 복을 받았기 때문에 그 복을 누리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평지 수훈의 행동 강령입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은 무엇을 하면 복이 주어진다가 아니라, 복을 받은 너희는 이렇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 준수를 통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요구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행위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상태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인가 아닌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성경은 행위를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지적하지만,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행위는 구원의 열매입니다.
심령의 변화 과정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회복되면 심령이 가난해지고, 의에 줄이고 목말라하게 됩니다. 세상의 것들로 배를 채우려 했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는 예수로 채우려고 합니다. 내 안에 예수로 가득찬 것으로 기뻐하고, 예수가 없는 것으로 슬퍼합니다. 내 죄로 인해 예수가 없다는 사실 앞에 눈물을 흘립니다.
평지수훈 마지막 4복 4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입니다. 마태가 이야기하는 핍박은 외부 사람에 의해서 어떤 해를 당한다기보다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반대 방향으로 밀려가는 상태를 뜻합니다.
핍박의 의미
마태가 이야기하는 핍박은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목적지로 밀려가는 성도의 삶 속에서 나타나게 되는 미움, 욕, 버림받음 등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교회인 우리는 이 땅에서 가난함과 줄임과 눈물 흘리는 자리로 향하게 됩니다.
내면적 핍박
예수를 믿고 나면 핍박의 현실은 일차적으로 우리 안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게 됩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자기 존재성, 주체성, 자같이 챙기기를 생존의 목적으로 삼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생명을 얻는 복을 받습니다.
성령의 역할과 자기 부인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처소가 되는 복을 받습니다.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 위해서는 육적 자아 안에 있는 옛 자아가 죽어야 할 자아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것이 자기 부인이며, 그 일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보내신 분이 성령입니다. 성령은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영적 싸움과 핍박
우리 속에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 전쟁이 바로 영적 싸움입니다. 옛 사람이 새 사람을 이길 때 우리는 내 몸에 의에 대해 죽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 외부에서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영원히 사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알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핍박의 결과: 감사
옛사람의 핍박 속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발견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고 참된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감사는 핍박이라는 종착지로 향하게 된 첫 출발점입니다.
핍박의 필요성
핍박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난이라는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한 택한 백성을 핍박받는 자리로 밀어 넣으십니다. 그래야 역사 속에서 내 육적 자아가 부정이 되고 부인되며 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했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도 쉽게 그 본성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길 것이고 다른 신을 믿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보다는 이방신들을 따르고 새 언약을 따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핍박의 필연성
성도 안에 핍박의 현실은 내부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핍박이 왜 우리에게 닥쳐 오는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는 의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땅에 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율법과의 대조
바울은 하나님의 의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율법을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의는 율법과 대척점에 있는 것임에도 율법과 선지자에 의해서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율법의 진위와 선지자들이 전한 바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핍박
예수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세상이 성도들을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의를 가지고 계시는 의인입니다. 예수의 의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 율법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인간의 의를 구축하기 위해서 핍박을 합니다.
핍박의 현실과 오해
예수 때문에 칭찬받는 자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잘 믿으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핍박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핍박을 받으면 저 사람에게 어떤 신앙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진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죠.
거짓 선지자와 칭찬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금식과 기도와 번제와 소재만 드리면 하나님이 평강을 주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노력을 하면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고, 그렇게 하나님이 감동하시면 우리에게 평강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의 미움과 인간의 의
예수는 그렇게 높아지는 것이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인간이 스스로에게 의를 주게 되면 그들은 착한 사람, 선한 사람, 의로운 사람 등의 칭호를 받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높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의 의로 높아진 자들을 미워하신다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침입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친입한다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그 하나님 나라를 친입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들의 끝없는 자기 자율성 발휘와 집요한 자존심 챙기기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세상의 칭찬
온 세상에 다 칭찬해 주는 건강하고 이상적인 교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칭찬을 받는 일을 열심히 해서 세상으로부터 야 저런 교회라면 나도 다니고 싶다. 그러한 평가를 받아내는 것이 옳은 모습입니까?
세상의 미움과 핍박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아.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핍박의 약속과 경건
기독교인들에게 확실히 약속된 단 한 가지 그것이 바로 핍박 즉 고난입니다. 세상에 미움을 받습니다. 착하게 살면 세상에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면제부는 없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예수의 의를 추구할수록 경건하게 살려고 할수록 핍박은 더 심해지고 거세진다고 말씀합니다.
가족의 핍박과 예수의 사랑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도대체 성도가 붙들고 살아야 하는 예수의 의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예수를 알지 못하는 가족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아야 합니까?
제자들의 파송과 핍박
예수께서 12두 사도를 택하시고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어떤 힘을 주셨습니까? 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냥 핍박을 받는 자리로 밀어넣으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양으로 만들어서 이리들의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뱀의 지혜와 양의 자리
뱀같이 지혜롭게 지내라고 하시죠. 그 말은 뱀의 지혜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지혜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뱀의 지혜는 인간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자기 자리를 이탈하게 유도해내는 것입니다. 교만의 자리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능력과 핍박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렇게까지 해 주었는데 왜 제자들이 핍박을 당해야 합니까? 예수도 죽은 자를 살리셨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시며 병든 자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예수를 핍박하더니 급기야 십자가에 매달아서 죽여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성경은 교회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에 죽은 자를 살려주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살려주는 성도들을 왜 미워하는 것입니까?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을 상징적 모형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와 율법주의의 붕괴
복음이 인간들 중심의 인본주의와 율법주의를 깨 부수는 그림인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인간의 의가 부정되는 것이고 인간들의 자존심이 땅에 박히는 모습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성실한 자들인 줄 알고 그렇게 노력하며 살았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회개해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존심과 핍박
죄인들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게 무엇입니까? 자존심입니다. 인간들이 합의하여 의인으로 세워 놓은 사람이 의인이 아닌 자리로 내려가게 되면 인간들의 판단 자체가 부정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의 의와 핍박
예수의 의가 전해지면 교회가 핍박을 받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희생하고 손해를 보는 등의 것들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의 의만을 외치며 그러한 인간들의 행위를 부정하고 부인해 버림으로 인해서 세상으로부터 조롱당하고 멸시당하는 성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능력이고 지혜인 것이지 인간들의 그 어떠한 노력이나 열심과 공로도 능력이 될 수 없고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핍박의 은혜와 긍휼
핍박은 하나님의 추격과 밀어냄에 의해서 발생되는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핍박을 당하는 것은 싸움의 승패의 관점으로 따져봤을 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입니다.
패배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은 예수의 의만 의지하고 예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만을 전하는 자기 백성을 이 세상에서 지도록 만드십니까? 세상은 절대로 스스로 돌이켜 하나님께 향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본주의와 예수의 의
인간의 의를 의지하고 내세우는 자들은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멋지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고 인간의 자존심을 멋지게 세워 주지 않습니까? 반면에 예수의 의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천국의 자리
의로 인해 핍박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통치에 완벽하게 장악되어 인간들 스스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자기 부인의 자리, 육의 죽음의 자리로 밀려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천국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하게 실현되는 것이다.
예수의 의와 핍박의 기쁨
예수의 피복음을 전하느라 이 세상에서 조금 면박을 당해도 괜찮습니다. 멋진 행위로 자신을 자랑하는 이들 앞에서 좀 작아 보여도 괜찮습니다. 먼저 예수의 의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배워야 합니다.
사도들의 기쁨과 고난
예수의 의만을 전하다가 나중에 감옥에 갇혀서 실컷 두드려 맞고 나오면서도 그 핍박을 기쁘고 즐겁게 여겼습니다. 예수의 의를 전하다가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세상의 구제 불능과 죽음의 자리
세상은 전부 이기는 자리 승리의 자리로 향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핍박당하도록 이리들 앞에 양으로 보내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핍박을 받아 주는 것이 이기는 것
예수의 의로 인해 핍박이 찾아올 때에 그 핍박을 받아 주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 핍박에서 벗어나지 않고 맞아 죽는 그 자리, 자기를 부인하며 예수의 십자가를 지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리로 향하는 것이 진짜 성숙인 것입니다.
예수를 바르게 아는 일
자꾸 교회를 다니면서 착한 일, 선한 일, 정당하고 정직한 일, 그러한 일들을 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런 열심을 내기 이전에 예수를 바르게 아는 일부터 하셔야 됩니다. 예수를 알고 핍박을 받아 죽는 일부터 해야 우리가 하는 지금의 이 착한 일, 선한 일, 정당하고 정직한 그 모든 일들에 의미가 생기는 것입니다.
칭찬이 아닌 하나님의 인정
우리는 칭찬을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내가 내 의를 챙기기 위해 노력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칭찬을 받는 그 자리에 예수는 욕을 듣고 미움을 당하시고 계신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복이 아니라 화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
우리는 남과 비교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뭐라고 있는가? 그게 중요합니다. 아무리 주변에서 그렇게 하고 절대 다수가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다수를 따라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핍박의 자리와 하나님의 의중
핍박의 자리로 몰고 가시는 하나님의 의중을 헤아리고 그 가운데 심령의 가난과 의에 줄이고 목말하며 눈물로 아 그렇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되는구나. 주님 제 인생에 주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 주십시오.
감사의 자리와 참미
하나님이 창세전 구원하기로 작정한 자들이 서게 될 마지막 자리가 어느 자리입니까? 하나님을 참미하는 자리 아닙니까? 누가 찬양합니까? 감사하는 자가 찬양합니다. 감사가 없는 자는 참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하늘의 상급
우리가 칭찬을 받아야 할 대상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예수의 의로 핍박받는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배해 놓으신 그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