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이 다큐멘터리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 포로가 된 러시아 군 소속 고려인 청년들의 잊혀진 이야기를 추적합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담긴 음성 기록을 발견하고, 그들의 삶과 고통, 그리고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밝혀냅니다.
- 1917년 녹음된 고려인 포로들의 음성 기록 발견
- 이들의 비극적인 운명과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 조명
- 100년 동안 잊혀진 역사를 되살리고 그들을 위로
방랑 뮤지션, 잊혀진 목소리를 찾아서
방랑 뮤지션은 음악을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하며, 제1차 세계 대전 격전지였던 베를린에서 희생된 고려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는 100년 전 베를린에서 사라진 한인 청년들을 찾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민족학 박물관, 1917년의 음성
민족학 박물관에서 1917년에 녹음된 한인으로 추정되는 음원을 발견합니다. 이 음반에는 아리랑을 포함한 45곡의 노래가 담겨 있으며, 녹음 기록지에는 김 그레고리라는 이름과 페니스베르크에서 녹음되었다는 정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 연해주 1대에 살던 고려인으로, 1차 세계 대전 전쟁 포로였습니다.
전쟁 포로, 역사의 뒤안길
고려인 청년들이 러시아 군복을 입고 독일에서 포로가 된 이유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 열강들이 승리하기 위해 전 세계 식민지에서 자원을 동원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도 징집 대상이 되었고, 러시아군에 입대한 4천여 명의 고려인들은 동부 전선으로 향했다가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습니다. 포로들은 독일의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어 인체 실험과 음성 실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페니스베르크 수용소, 김 그리고리의 흔적
100년이 지난 베를린은 평온을 되찾았지만, 과거 포로 수용소였던 페니스베르크 수용소에서 김 그리고리는 29개의 음성을 남겼습니다. 독일 정부는 포로들에게 인격적 대우를 하고 있다는 거짓 선전을 위해 사진을 연출했고, 포로들은 그들의 지시에 따라야 했습니다. 니스베르크 수용소로 이송된 15,000여 명의 포로들 중 고려인들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들의 고통을 느낍니다.
빈스도르프, 음성 실험의 비밀
2차 세계 대전까지 독일 국방부가 위치했던 빈스도르프에서 음성 실험에 관한 기록을 찾습니다. 1916년부터 1917년까지 여섯 명의 고려인이 음성 실험대에 올랐으며, 김 그레고리의 사연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27세에 러시아군에 입대하여 3년 반 동안 군 생활을 했고, 다시 1차 세계 대전에 징집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움과 절망의 노래들을 남겼습니다.
벨라루스,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벨라루스 공화국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병사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던 창구 중 하나였습니다. 독일군 포로가 된 고려인의 행적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에 벨라루스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이 모여 그들을 환영합니다. 100년이 흘렀지만 그들의 마음과 입맛은 한국 사람 그대로이며, 고려인 포로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들은 고려인 청년들의 희생을 기억하지 못해 죄스러운 마음을 고국의 노래로 달래봅니다.
러시아 연애주, 선택의 기로
러시아 연애주는 간도와 배고픔을 피하고 일제의 압박을 피할 수 있는 새로운 안식처였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청년들에게 전쟁은 가난에서 벗어나고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기회였고, 그들은 젊음을 담보로 전쟁터에 뛰어들었습니다.
빈스토루프, 절망의 흔적
고려인 병사들은 40일 밤을 달려 빈스토루프 러시아군 주둔지에 도착했지만, 그곳은 독일군에 의해 함락되어 러시아군 포로 수용소로 바뀌었습니다. 4년간 지속된 전쟁은 심각한 기근을 가져왔고, 포로들은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며, 전쟁은 비극만을 남겼습니다.
훔볼트 대학, 안스테판을 만나다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 도서관에서 100년 전 고려인의 흔적이 담긴 책을 발견합니다. 그 책에는 "우리의 적들"이라는 제목으로 포로들의 얼굴이 담겨 있으며, 그중 안스테판이라는 한국 사람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1917년 음성 실험 사진에는 포로들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지만, 동일인 식별 영상 판독을 통해 두 명의 안스테판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조국 독립을 향한 열망
러시아 군 역사 문서 보관소 확인 결과, 안스테판은 제3시베리아 보병사단 소속으로 밝혀졌습니다. 고려인들은 조국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러시아군에 지원했으며, 안스테판은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단합을 강조하는 노래를 주로 남겼습니다. 그는 포로가 되어서도 조국의 독립을 대한 사람의 강인함을 뜨겁게 노래했습니다.
민스터, 이름 없는 병사들의 무덤
전쟁이 끝난 후 안스테판과 고려인 포로들은 어디로 갔을까? 안스테판이 음성 실험을 했던 민스터에서 포로 수용소는 철거되었지만, 당시 기록은 남아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고려인 포로들의 행방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러시아 병사들의 마지막 안식처에서 고려인 병사의 무덤은 없고 이름 없는 병사의 무덤만이 있을 뿐입니다.
영면을 기원하며
전쟁의 비극은 잊을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려인 포로들은 목소리를 남기고, 그들의 이야기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