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요약
이 영상은 반포가 원래부터 부촌이었는지, 여의도보다 상급지인지, 앞으로도 최고의 부촌이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도시계획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과거 기사와 통계 자료를 통해 반포의 위상 변화를 살펴보고, 도시계획 변화와 재건축이 부촌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합니다.
- 반포는 원래 서민 아파트 단지였으며, 도시계획과 재건축으로 인해 현재의 부촌이 되었습니다.
- 부촌은 10년 주기로 이동하며, 이는 도시계획 재정비와 정책 결정자의 개발 선호도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 강남 부자들은 도시계획에 따른 투자를 하며, 이는 똘똘한 한 채 전략과는 다른 접근 방식입니다.
반포, 원래부터 부촌이었을까? [0:00]
1975년 기사에 따르면 반포는 관악구에 위치한 서민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AID 차관으로 건설된 22평형 아파트는 저금리로 장기간 거주가 가능하여 서민층이 주로 입주했습니다. 현재의 래미안 트리니티원(반포주공 1단지) 위치가 당시 AID 차관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과거 기사를 통해 본 반포의 위상 변화 [2:09]
1974년 반포 아파트 32평의 분양가는 800만 원이었으며, 용산(한강맨션)이 1,000만 원으로 더 비쌌습니다. 1985년에는 반포 32평이 5,500만 원에서 7,900만 원으로 올랐지만, 여의도 시범 아파트 36평이 6,000만 원에서 8,000만 원으로 더 비쌌습니다. 현재 반포가 더 비싼 이유는 한강 르네상스 사업으로 재건축이 추진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촌의 이동과 도시계획의 영향 [3:26]
1998년 IMF 외환 위기 이후 건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재건축이 추진되었습니다. 당시 복도식 아파트 13평형이 1억 3,800만 원이었는데, 강서구 화곡동 시영 아파트도 같은 가격이었습니다. 2016년 기사에 따르면 부촌은 10년 주기로 성북동, 압구정동, 대치동, 반포 순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는 도시계획 변화와 정책 결정자의 개발 선호도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도시계획과 학군의 관계 [6:21]
1966년부터 도시계획은 주기적으로 바뀌면서 정책 결정자가 밀어주는 곳이 바뀌었습니다. 1972년에는 천호, 영동, 강남, 영등포, 화곡이 부도심으로 지정되었습니다. 1978년에는 강북 지역 개발을 억제하고 강남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학군은 지구 단위 계획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단기간에 형성 가능하며, 대치동 학군 역시 강북의 좋은 학교를 강남으로 옮겨오면서 형성되었습니다.
반포의 미래와 투자 전략 [8:23]
반포는 재건축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부촌이 되었지만, 여의도 재건축이 완료되면 시세가 역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6년 기사처럼 10년마다 부촌이 이동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포가 계속 최고의 부촌이 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강남 부자들은 똘똘한 한 채 전략보다는 도시계획에 따른 투자를 선호하며, 상업 지역 건물 투자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합니다. 따라서 똘똘한 한 채 전략으로는 반포가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